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미드 카르자이 (문단 편집) === 1차 임기 === ||<-2>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bushkarzai2006.jpg|width=100%]]}}}|| ||<-2> '''{{{#000000 [[조지 부시]] 대통령과 카르자이 대통령의 모습}}}''' ||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[[아프가니스탄]]의 정세를 알리고 지지를 호소한 카르자이는 순식간에 아프가니스탄의 정치 스타로 떠올랐다. 덕분에 선거가 치러지고 55.4%라는 압도적인 표를 받고 당선이 되었다. 이는 [[라이벌]] 후보의 3배 이상을 받은 것이었다.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국민들과 전세계는 탈레반 광신정권에 종지부를 찍은 카르자이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지지했다. 이렇게 대통령이 된 카르자이였지만 문제는 '''대통령이 되기까지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다.''' 카르자이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호소를 할 때, 실질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을 축출해 낸 것은 [[북부동맹(아프가니스탄)|북부동맹]]인데, 이 북부동맹은 탈레반에 대항하기 위해 여러 민족(타지크족, 우즈베크족, 하자라족 / 카르자이는 [[파슈툰족]]이다.)이 힘을 합해 만든 단체였다. 이때문에 정부관료 임명과정에 많은 압박을 받고, [[굴욕]]적인 수락을 해야 했는데 '''자신을 스파이 혐의로 감옥에 쳐넣으려고 한 사람을 부통령 겸 국방부 장관 자리에 앉혀야 했던 것이다.'''[* 모하메드 파힘. 타지크계열 아프가니스탄인으로 북부동맹에서 군사령관을 지낸 거물급 인사다.] 사실 이런 카르자이의 낮은 영향력은 예전부터 예상할 수 있었는데 2002~2003년 동안 북부동맹을 중심으로 한 세 번의 [[쿠데타]] 미수가 있었기 때문이다. 또한 수도만 벗어나도 21세기와 벗어난 생활을 하며 접근하기조차 쉽지않은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카르자이의 영향력이 [[카불]]에만 미치도록 만들었다. 이 때문에 카르자이는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아닌 '''카불 대통령'''으로 조롱을 받을 정도로 영향력이 없었다. 상황이 이렇게 되자, 카르자이는 북부동맹 일색인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자신과 같은 민족인 [[파슈툰족]] 관리를 고용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또 반발을 불러와 정국운영에 많은 차질을 빚었다. 이 와중에 지원금 상당수가 증발하는건 덤이었다. 이렇게 정부는 허둥대고 미군이 아프간보다 [[이라크]]에 더 관심을 가지는 동안 [[탈레반]]은 은밀하게 세를 불려가고 있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